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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어떻게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지켜왔나

한류산책 2026. 9.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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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떻게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지켜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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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화려한 연산의 이면에는 조용히 숨 쉬는 '기억'이 있다. 33년째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쥐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단 0.001%의 수율을 사수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 3시에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으로 뛰어드는 엔지니어들의 숨 막히는 밤의 기록. 1위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밤 다시 따내는 것이다.

※ 1: 03시 47분, 클린룸의 경보음

나는 방진복을 입는 데 정확히 4분 30초가 걸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세한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는 하얀 우주복 같은 이 옷을 입고 벗는 일. 벌써 6년째 매일같이 반복하는 일인데도 매번 그 4분 30초가 영겁처럼 길게 느껴진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욱 길었다. 숨을 헐떡이며 방진화의 끈을 조여 매는 동안에도, 귓가에는 아까 휴대폰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던 알람 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 새벽 3시 47분. 특정 라인을 타고 흐르던 웨이퍼 한 장의 수율이 기준선 아래로 떨어졌다는, 팹 엔지니어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알람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반도체를 '칩'이라고 부른다. 기기판 위에 얹혀 있는 손톱만 한 검은 사각형. 하지만 내가 매일 밤낮으로 들여다보는 건 그런 작고 예쁜 칩이 아니다. 지름 300밀리미터짜리 둥근 원판, 은빛으로 매끄럽게 빛나는 웨이퍼다. 우리는 그 넓은 거울 같은 원판 위에 머리카락 굵기의 만분의 일 수준으로 미세한 회로를 새긴다. 도시의 복잡한 도로망보다 수백만 배는 더 조밀하고 복잡한 길을 빛으로 깎고 화학 물질로 씻어내며 쌓아 올린다. 그 미로 같은 회로 중 단 하나라도 어긋나거나 끊어지면, 그 웨이퍼는 그냥 비싼 쓰레기가 된다. 그 회로 하나의 단선으로 인해 서울 어딘가의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 누군가의 AI 답변이 0.3초 늦어질 수도 있고, 자율주행차의 센서가 순간적으로 멈칫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미세한 오차가 만들어내는 끔찍한 나비효과를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래서 새벽 3시에도 미친놈처럼 뛴다.

내가 굳이 이 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켠 스마트폰, 점심시간에 업무를 핑계로 물어본 AI 챗봇, 저녁 퇴근길에 멍하니 쳐다본 스트리밍 영상. 그 모든 화려하고 매끄러운 디지털의 바닥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억하는 장치'가 촘촘히 깔려 있다. 사람들은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하고 복잡한 수식을 풀어내는 연산 장치, 즉 시스템 반도체나 GPU에 환호한다. 연산은 화려하고 눈에 띄지만, 기억은 언제나 조용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하지만 연산은 기억이 없으면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GPU가 아무리 천재적으로 빨라도, 그 천재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물어다 줄 메모리가 느려 터졌다면 그 비싼 GPU는 그저 전력만 갉아먹는 비싼 히터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조용하고 거대한 기억의 바닥을,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구상의 한 나라가 굳건히 붙잡고 있다. 2026년 1분기 기준,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한국의 두 회사가 6할을 훌쩍 넘긴다. 스마트폰과 SSD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역시 압도적인 1위다. 게다가 요즘 온 세상을 뒤집어놓고 있는 AI 서버의 핵심, 고대역폭 메모리라 불리는 HBM은 아예 한 회사가 혼자서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있다. 인구는 5천만 명 남짓에 불과하고, 천연자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국토는 비좁은 데다 허리마저 두 동강 난 분단국가가 말이다.

나는 묵직한 게이트를 통과하며 붉게 빛나는 모니터 수치를 노려본다. '이 라인이 이대로 멈추면, 손실은 시간당 수억 원 단위로 불어난다.' 숫자가 주는 압박감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진짜 무서워하는 건 당장 허공으로 날아가는 억 단위의 돈이 아니다. 우리가 단 1초라도 방심하고 손을 놓는 순간, 이 1위의 자리를 맹수처럼 노리고 지난 30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뛰어온 나라가 최소 셋이나 등 뒤에 바짝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세계에서 1위라는 타이틀은 한 번 따내면 영원히 장식장에 모셔둘 수 있는 트로피가 아니다. 그것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경쟁 속에서 새롭게 다시 따내야 하는 생존권에 가깝다. 그 치열하고도 고단한 하루가, 오늘 새벽 3시 47분에도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 2: 아버지의 노트

문제를 일으킨 챔버의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데 약간의 대기 시간이 생겼다. 나는 습관처럼 책상 맨 아래 칸의 묵직한 서랍을 열었다. 서류 더미 맨 밑바닥, 손때가 새카맣게 탄 낡은 스프링 노트 한 권이 놓여 있다. 1992년, 기흥. 겉표지에는 굵은 모나미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64M'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아버지는 그 뜨거웠던 시절, 이 공장의 엔지니어였다. 내가 갓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날 저녁, 좁은 아파트의 낡은 밥상머리에서도 텔레비전 뉴스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된장찌개를 떠먹다 말고 무심하게 툭 던졌다.

"그래서, 당신 회사가 세계 최초면 당신 월급도 세계 최고로 오르는 거야?"

아버지는 숟가락을 든 채 껄껄 웃기만 했다. 피곤에 절어 충혈된 눈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반짝거렸다. 어린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세계 최초가 무엇인지, 64메가가 얼마나 거대한 숫자인지 알 턱이 없었다. 내가 그 웃음의 진짜 의미와 그 시절 엔지니어들의 뼈 깎는 헌신을 이해하게 된 건, 나 자신이 방진복을 입고 이 차가운 클린룸에 서게 된 이후였다.

노트를 펼치면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수치와 도면들이 튀어나온다. 1983년 2월, 한국의 한 기업 총수가 도쿄에서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전 세계는 일제히 코웃음을 쳤다. 그 당시 한국은 컬러텔레비전조차 남의 기술을 빌려 겨우겨우 조립해 내다 팔던 수준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거대 기업들이 이미 견고한 성벽을 쌓고 장악해버린 첨단 시장에, 기초 기술도 자본도 없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수조 원의 막대한 돈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으니 비웃음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 사업 초기 몇 년간은 공장을 돌리는 족족 천문학적인 적자가 쌓였다. 웨이퍼를 구워낼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하지만 기적은 그 무모함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그리고 2008년 무렵,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무섭게 폭락했다. 수요가 실종되고 공급이 넘쳐나면서 반도체 가격이 생산 원가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끔찍한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타이완, 일본, 유럽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겁에 질려 공장 가동을 멈추고 감산에 돌입하며 도망칠 궁리를 할 때, 한국의 기업들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오히려 수조 원을 대출받아 새로운 라인을 깔고 차세대 공정에 미친 듯이 투자했다. 전 세계 언론이 '자살 행위'라며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그 피 말리는 미친 짓의 끝에, 결국 굴지의 독일 반도체 회사가 두 손을 들고 파산해버렸고,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회사들은 이리저리 합쳐지다 결국 뿔뿔이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은 자만이 시장의 파이를 독식하며 거대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고, 그 압도적인 규모는 생산 원가를 혁신적으로 낮추었으며, 그렇게 낮아진 원가는 또다시 찾아올 다음번의 혹독한 불황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방패가 되었다. 그것이 지금 나와 내 동료들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세계 1위라는 자리의 단단한 지질층이다.

노트의 맨 마지막 장, 기름때가 묻은 종이 귀퉁이에 아버지가 흘려 쓴 문장이 하나 있다.

'수율은 인격이다.'

입사 초기,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콧방귀를 꼈다. '무슨 쌍팔년도 정신교육 같은 소리야. 수율은 과학이고 통계지, 웬 인격?' 하지만 6년 동안 수천 장의 웨이퍼를 폐기 처분해 보고, 수백 번의 밤을 새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말의 진짜 무게를 알게 되었다.

99%의 수율을 99.9%로 끌어올리는 건, 결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엔지니어 한 명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장비를 관리하는 엔지니어가 밸브 하나를 0.1초 빨리 잠그는 민첩함, 협력사 직원이 가스 배관의 나사를 규격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이는 성실함, 야간조가 주간조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단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전달하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팹 안팎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보이지 않는 성실함과 땀방울이 소수점 아래로 촘촘하게 합산되어 나타나는 최종 결과값. 그래서 수율은 곧 그 팹을 돌리는 사람들의 인격인 것이다.

아버지는 5년 전에 30년 넘게 입었던 방진복을 벗고 정년퇴직했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청춘을 바쳐 만들던 그 반도체보다 무려 2만 배 이상 빽빽하게 집적된 초정밀 칩을 만든다. 아버지가 물려준 낡은 스프링 노트를 서랍에 품고서.

※ 3: 30분 거리의 나라

새벽 6시 정각. 클린룸 밖으로 빠져나와 굳어있는 목을 돌리고 있을 때, 장비 협력사의 박 팀장님이 헐레벌떡 로비로 들어섰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새벽 5시 20분에 다급하게 전화를 건 지 정확히 40분 만의 도착이었다.

"아이고, 서 프로님. 챔버 압력 밸브 쪽에 또 미세 누출 생겼다면서요? 도면 챙겨왔으니 바로 들어갑시다."

나는 이 익숙하고도 당연한 장면을, 예전 독일 인피니언에 다니는 대학 동기 녀석에게 설명해준 적이 있다. 녀석은 입에 머금었던 맥주를 뿜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녀석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팹 라인에 장비 이슈가 발생하면 일단 본사 시스템에 정식으로 에러 티켓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 담당자가 배정되고, 그 엔지니어의 스케줄을 확인한 뒤 출장 일정을 조율한다. 아무리 빨리 서둘러도 엔지니어가 팹에 도착하기까지 최소 사흘이 걸린다는 것이다. 사흘이라니. 반도체 라인이 사흘을 멈추면 수백억이 공중으로 증발하는 건 차치하고, 앞뒤 공정이 모두 엉켜버려 몇 달 치 스케줄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그런데 나는 전화 한 통을 걸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실 시간이면 전문가가 도면을 들고 달려온다. 40분 만에.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진짜 숨은 이유 중 하나다. 언론에서는 늘 초격차 기술력, 조 단위의 선제적 투자 같은 거창한 말들만 늘어놓지만, 사실 기술력 하나만으로는 이 기적 같은 30년의 패권을 온전히 설명할 길이 없다. 기초과학의 뿌리만 놓고 보면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더 깊고 두껍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압도하는 무기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독할 정도의 '밀도'다.

지도 위를 한번 그려보자. 경기 남부의 기흥과 화성, 평택을 지나 충청권의 청주와 천안에 이르기까지. 자동차로 아무리 밟아도 두 시간 안쪽으로 닿을 수 있는 좁은 반경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최첨단 팹이 거대한 성채처럼 서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세계적인 장비사들의 지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소재를 공급하는 화학 공장과 부품을 정밀하게 깎아내는 가공 업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거기에 우수한 인재들을 공급하는 대학과 연구소들까지 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

이 미친 밀도의 생태계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메일을 주고받으며 며칠씩 핑퐁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이 직접 차를 몰고 도면을 들고 달려온다. 낮에 라인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저녁이 되면 근처 국밥집에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리친다.

"아니, 박 팀장님! 밸브 구조를 이렇게 조금만 틀어보면 파티클 떨어지는 거 막을 수 있잖아요. 이거 이렇게 한번 바꿔봅시다!"
"아이고, 서 프로님. 그거 가공 단가가 얼만 줄 알아요? ...휴, 알았어요. 내일 아침에 본사 쪼아서 모레까지 시제품 깎아올 테니까 라인 테스트나 잡아줘요."

이 말도 안 되는 협업 사이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분기 단위, 길면 반년씩 걸려야 돌아가는 개선 사이클이 우리는 길어야 주 단위, 빠르면 일 단위로 맹렬하게 돌아간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이 속도가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차이를 만든다. 메모리 산업은 기본적으로 남들이 도저히 상상도 못 할 기상천외한 물건을 발명해 내는 산업이 아니다. 구조적으로는 남들도 다 알고 있고 결국엔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경쟁자보다 단 하루라도 더 빨리, 더 싸게, 더 안정적인 수율로, 무지막지하게 쏟아내는 산업이다. 차세대 D램 개발을 경쟁사보다 6개월 앞서 해내면, 그 6개월이라는 귀중한 시간 동안 전 세계 시장 가격은 우리가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양산 라인의 수율 안정화가 한 분기 빠르면, 그 분기의 조 단위 이익은 고스란히 우리 금고로 들어온다. 속도가 곧 생명이고 돈인 이 지독한 산업에서, 좁아터진 국토와 그 안에 빽빽하게 모여 사는 우리의 방식은 그 어떤 첨단 무기보다 강력했다.

물론 2019년 여름, 우리는 이 생태계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일본이 예고도 없이 포토레지스트를 비롯한 핵심 반도체 소재의 수출 길을 틀어막았을 때, 말 그대로 나라 전체의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뻔했다. 부랴부랴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난리를 친 끝에, 그 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에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부었다.

나는 현장에 있는 엔지니어로서 냉정하게 현실을 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자랑스럽게 떠들기엔 장비 국산화율은 여전히 20%대를 맴돌고 있고, 반도체에 회로를 그리는 핵심인 EUV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단 한 곳의 기업에 절대적으로 목을 매달고 있다. 수많은 화학 소재의 원재료는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위험할 정도로 높다. 완벽한 자립이라는 구호는 아직 정치인들의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걸, 방진복을 입는 우리는 다 안다.

그래도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고 40분 만에 달려와 작업복을 갈아입는 저 박 팀장님의 넓은 등을 보며 안도한다. 이 거대한 공장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의 끈끈한 네트워크. 이건 세상 그 어떤 억만장자도 돈으로 쉽게 살 수 없는, 우리의 진짜 실력이다.

※ 4: 판이 뒤집힌 날

시계를 조금 뒤로 돌려, 2019년쯤의 일이다. 사내에서 내가 속한 부서, 정확히는 우리 옆 파트를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적자 사업부' 혹은 '돈 먹는 하마'라고 부르며 수군거렸다. 바로 HBM, 고대역폭 메모리 개발팀 이야기다.

기존의 D램이 단독 주택을 옆으로 넓게 지어 나가는 방식이었다면, HBM은 그 집들을 좁은 땅 위에 수직으로 아파트처럼 높게 쌓아 올리는 개념이었다. 여덟 층, 열두 층, 나중에는 열여섯 층까지 D램을 위로 켜켜이 쌓는다. 그리고 그 층층의 칩들에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미세한 구멍을 수천 개 뚫어 위아래를 전기적으로 관통시킨다. TSV라는 이 공정은 말로 설명하기엔 쉬워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지옥 그 자체였다. 기술적으로 끔찍하게 만들기 어려웠고, 당연히 수율은 바닥을 기었으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비싸고 복잡한 물건을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고객이 지구상에 없었다는 거다.

"아니, 기존 D램으로도 충분히 잘 돌아가는데, 굳이 저렇게 비싸고 열 많이 나는 걸 누가 서버에 꽂아 쓴다고 저 난리야?"

사내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고 조롱 섞인 글이 올라왔고, 임원진이 모이는 경영전략 회의에서 "수요도 없는 HBM 프로젝트, 이제 그만 돈 낭비하고 접자"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당시 그 개발팀을 이끌던 리더들과 연구원들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들이 윗선에 깨지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한 기술적 확신 때문이었다.

'지금은 GPU가 데이터를 소화하는 속도가 메모리가 보내주는 속도와 얼추 맞지만, 언젠가 인간의 뇌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학습해야 하는 거대한 연산 장치가 등장하면... 그때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건 무조건 메모리 쪽이다. 그때가 오면 일반 D램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길을 넓혀야 한다.'

그것은 기약 없는 십 년짜리 도박이었다. 무려 10년 동안 수조 원의 연구 개발비를 쏟아부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잭팟을 기다리며 차가운 팹 구석에서 칩을 쌓고 또 쌓았다.

그리고 2022년 말, 챗GPT라는 거대한 파도가 일면서 인공지능이 그야말로 세상을 뒤덮어버렸다. 거대한 AI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그래픽 카드를 미친 듯이 찍어내던 굴지의 미국 기업은, 칩 옆에 바짝 붙여 데이터를 고속도로처럼 쏴줄 괴물 같은 메모리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이 잡듯 뒤졌다. 하지만 그 엄청난 스펙을 충족시킬 수 있는 메모리를 '당장 양산'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딱 한 군데뿐이었다. 수백 번의 '접자'는 압박을 견뎌내며 조용히 칼을 갈고 있던 바로 그곳. 우리 회사였다. 경쟁사들이 뒤늦게 부랴부랴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라인을 셋업 하려 했을 때, 우리는 이미 완성된 다음 세대 제품의 샘플을 들고 고객사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있었던 부서 전체 회식 자리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십 년을 묵묵히 버텨온,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HBM 팀의 최고참 선배가 기름때 낀 앞치마를 두른 채 소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소 같으면 걸쭉한 건배사라도 외쳤을 텐데, 선배는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붉어진 눈시울 아래로, 지난 10년간의 수모와 설움, 그리고 마침내 증명해 냈다는 안도감이 복잡하게 얽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옆에 앉아 있던 입사 3년 차 막내 후배가 장난스럽게 정적을 깼다.

"형님, 그럼 우리 부서 이제... 진짜로 안 접는 거죠?"

사람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선배는 소주를 단숨에 털어 넣으며 말없이 씩 웃고는 끄덕였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26년 지금, 전 세계 AI 서버에 들어가는 HBM 시장의 6할 가까이를 바로 그 한국의 한 기업이 모조리 쓸어 담고 있다. 한술 더 떠, 6세대 모델인 HBM4는 올해 초 보란 듯이 양산에 들어갔고, 이를 악물고 쫓아온 국내 라이벌 기업 역시 뒤이어 출하를 시작하며 맹추격하고 있다. 한국의 이 두 거대 기업이 서로의 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물어뜯고 싸우는 치열한 경쟁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 IT 생태계는 한국의 메모리를 벗어나서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완벽한 종속 구조가 만들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수천억짜리 AI 데이터센터 한 동을 짓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안에 들어가는 수만 개의 반도체를 모두 해체해서 원산지를 따져보면, 사실상 한국의 인천공항 화물터미널과 부산항을 거쳐 가지 않고는 그 거대한 시스템이 단 1바이트도 연산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람들은 뉴스에 나오는 이 엄청난 성과를 보며 그저 "한국 반도체가 운이 좋았다", "AI 붐이라는 로또를 맞았다"라고 쉽게 말한다. 반쯤은 맞는 말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세상에 공짜로 떨어지는 운은 없다. 운이라는 놈은 오직 오랜 시간 묵묵히 창고에 쌓아둔 '준비된 재고' 위에만 내려앉는다. "당장 접어라"는 임원진의 호통을 열 번 듣고도 열 번 모두 고개를 숙인 채 꾸역꾸역 서랍 속에 도면을 숨겨두고 버틴, 미련한 엔지니어들의 땀 냄새 나는 서랍에만 말이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은 1,650억 달러를 가뿐히 넘겼다. 2년 연속 사상 최대치 갱신이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돈이 단 하나의 산업에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읽어 내리는 그 차가운 1,650억 달러라는 거대한 숫자 안에, 십 년 전 어느 날 '접히지 않고 살아남은' 작고 보잘것없던 프로젝트 하나가 눈물겹게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 5: 헤드헌터의 전화

오전 11시. 지루하고 피 말리는 추적 끝에 수율 하락의 원인이 마침내 특정 챔버 내부에 떠다니는 미세 파티클,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입자 때문으로 좁혀졌다. 즉각적인 조치가 들어갔고, 나는 오늘 출근한 지 일곱 시간 만에 처음으로 방진복 후드를 벗고 자판기 앞표지에 기대어 믹스 커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뜨거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빳빳하게 굳어 있던 신경을 조금 녹여주려던 찰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서진우 프로님 되십니까. 늦은 오전까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는 글로벌 리크루팅 펌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흠잡을 데 없이 유창하고 정중한 한국어였다. 하지만 그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정확히 어느 나라의 어떤 기업을 위해 일하는지, 진짜 회사 이름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연봉의 정확히 세 배를 불렀고, 현지 최고급 아파트 제공,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 학비 전액 지원, 그리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3년의 고용 보장 계약을 읊조렸다. 마치 홈쇼핑 쇼호스트가 잘 짜인 대본을 읽어 내려가듯 매끄러운 제안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치며 거절하려 했지만, 상대방은 능숙하게 내 말을 자르며 마지막 쐐기를 박듯 속삭였다.

"서 프로님, 고민되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이미 프로님 부서의 직속 선배님 한 분도 지난달에 저희 쪽으로 가셨습니다. 누구라고 말씀은 못 드리지만, 가셔서 아주 만족하고 계십니다."

나는 대꾸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뚜- 뚜-' 하는 끊긴 신호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종이컵을 쥔 손끝이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의 이유가 동료를 돈으로 빼내 가는 그들의 노골적인 사냥 방식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연봉 세 배면 얼만지' 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본 내 밑바닥의 얄팍함 때문인지 알 수 없어 입맛이 썼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왕좌는, 비단 첨단 실험실이나 수조 원짜리 장비 앞에서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후발국의 메모리 기업들은 거대한 국가 자본을 등에 업고 이미 범용 D램 시장 점유율을 한 자릿수 후반대까지 무섭게 끌어올렸다. 그들은 철저하게 가격 경쟁력으로 밀고 들어오며 시장의 밑바닥부터 갉아먹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서 뺏어가고 싶어 하는 가장 치명적인 전리품은 최신형 노광 장비나 설계 도면이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을 매뉴얼이나 문서로 정리해서 넘긴다 한들,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40% 남짓에 불과하다. 수천 개의 공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이 거대한 마법 같은 팹 안에서, 나머지 60%의 결정적 디테일은 오직 엔지니어들의 머릿속과 손끝에만 존재한다. 99%에서 멈춰버린 수율을 99.9%로 기어이 끌어올려 본 사람. 수십 번의 뼈아픈 실패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데이터를 축적해 본 사람. 왜 그 수많은 밸브 중에서 하필 그 밸브를, 왜 그 타이밍과 순서로 잠가야만 파티클이 떨어지지 않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 그들은 종이 쪼가리 문서가 아니라, 그 감각을 몸에 새긴 사람의 뇌를 통째로 사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특허청 금고의 서류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라인에 서 있는 사람을 지켜야만 한다.

최근 몇 년간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다 적발된 유출 사건이 끊임없이 재판에 올랐다. 심지어 우리 팹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구조의 복제 공장을 해외에 통째로 지으려다 국정원에 덜미를 잡힌 충격적인 사례도 있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을 개정하고 처벌 수위는 점점 강해졌지만, 솔직히 현장에 있는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감옥에 보내겠다는 으름장과 처벌만으로는 이 거대한 인력 유출의 둑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는 사람이, 이 땅에 남을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막힌다.

연봉 세 배라는 달콤한 독사과를 거절하고서라도 이 차가운 클린룸에 남으려면, 여기서 하는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할 만큼 더 재미있고, 사회적으로 더 큰 인정을 받아야 한다. 내 아이가 다닐 좋은 학교가 팹 근처 인프라에 든든하게 갖춰져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30년 전 아버지 세대가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때 느꼈던 그 벅찬 자부심을 우리 세대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야만 막을 수 있다.

그건 일개 회사 인사팀이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니다. 다행히 올해 초, 숱한 진통 끝에 반도체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전력망과 용수 같은 거대 인프라 구축, 지지부진하던 인허가 문제, 그리고 인력 양성에 대한 지원을 국가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 밀어붙이는 법안이다. 물론 연구개발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시간 예외를 두는 조항을 두고는 아직도 팽팽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글로벌 전쟁터에서 랩실의 불이 꺼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과, 엔지니어 역시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라는 권리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이 무조건 옳다고 단언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 치열한 논쟁이 국회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로소 이 나라가 반도체 산업을 단순한 수출 품목 하나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지탱하는 '척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나는 통화 기록에 남아있는 번호를 스팸으로 차단했다. 그리고 바닥에 남은 식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 6: 오후 3시, 두 사람

오후 3시. 팹 밖의 보안 구역 내 접견실로 두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전혀 다른 두 세계에서 온, 전혀 다른 두 세대의 사람이다.

한 명은 우리 라인에 세정액 첨가제를 납품하는 협력사의 최 대표님이다. 올해 예순셋. 직원은 다 합쳐봐야 마흔 명 남짓한 작은 중소기업을 이끌고 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반도체 웨이퍼를 씻어내는 공정에 들어가는 이 특수 첨가제 물질은 전량 일본 수입에 의존했었다. 당시 쉰 중반이었던 대표님은 그 사태를 보며 평생 일궈온 자신의 집과 공장 부지를 담보로 잡고 미친 듯이 국산화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기업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던 일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3년 내내 품질 테스트에서 번번이 낙방하며 납품에 실패했고, 그 사이 두 번의 부도 위기가 찾아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집념 하나로 버텨낸 끝에, 지금은 우리 라인의 가장 민감한 일부 공정에 그 작은 회사의 제품이 당당히 들어간다. 오늘 대표님은 수율을 조금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화합물 조성을 개발했다며, 그 데이터가 담긴 서류를 직접 들고 오셨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서류 봉투는 모서리가 다 해어지고 낡아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예순셋의 손등에는 지워지지 않는 화학약품 얼룩이 훈장처럼 배어 있었다.

또 한 명의 손님은 스물셋, K대 반도체 계약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인턴사원이다. 앳된 얼굴이지만 눈빛만큼은 레이저처럼 날카롭다. 대학교 3학년 때 이미 학교 클린룸에서 팹 실습을 완벽하게 마쳤고, 출근 첫날부터 내 책상 위에 최신 해외 논문 두 편을 출력해 놓고는 달달 외우다시피 읽고 온 괴물 같은 녀석이다. 방금 전, 내가 새로운 세정액 첨가제가 적용될 공정의 메커니즘을 칠판에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녀석이 불쑥 손을 들더니 물었다.

"선배님, 그럼 기존의 3번 스텝을 지금 1번 앞으로 당겨버리고, 대표님이 가져오신 이 새 조성을 베이스로 온도를 5도만 낮춰서 증착시키면... 파티클 발생률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나요?"

나는 헛기침을 하며 그게 현장에서 당장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장비의 과부하 문제, 앞선 공정과의 열역학적 간섭... 하지만 설명을 이어가던 절반쯤에서 턱 막히고 말았다. 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어? 잠시만. 진짜로 당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라는 깨달음이 번쩍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좁은 접견실 테이블 양쪽에 마주 앉은 예순셋의 낡은 서류 봉투와 스물셋의 번뜩이는 두뇌, 그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사람들이 밖에서는 절대 보지 못하는 '세계 1위'의 진짜 정체를 목격한다. 1위라는 거대한 타이틀은 결코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재계 순위 1, 2위 대기업 두 곳만의 독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은행에 담보로 잡힌 누군가의 집과 피땀, 그리고 밤을 새워가며 수십 장의 영어 논문을 읽어 내린 젊은 천재의 열정,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하고 눈물겹게 빚어지는 결정체다.

물론 이 조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은 차갑고 냉혹하다. 대표님의 회사는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회사를 물려받을 후계자가 없다. 번듯한 대학을 졸업한 대표님의 아들은, 화학약품 냄새를 맡으며 기름때를 묻히는 이 고단한 제조업을 절대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단다. 반대편에 앉은 똑똑한 인턴 역시 마찬가지다. 녀석은 열정적이지만, 녀석과 함께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했던 동기들의 절반은 이미 자퇴서를 내고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 학원으로 떠났다. 안정적인 전문직과 고수익을 좇아 이공계 최고 인재들이 특정 진로로 무섭게 쏠려버린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곳 수도권을 조금만 벗어난 지방의 협력사 팹들은 아무리 파격적인 채용 공고를 내고 연봉을 올려줘도 지원서조차 들어오지 않아 라인을 멈춰야 할 판이다. 당장 2030년대가 되면 이 반도체 산업 현장에 필요한 석·박사급 고급 인력과 현장 엔지니어가 수만 명 이상 턱없이 부족해질 거라는 우울한 국책 연구원의 보고서를 나 역시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지금 미래를 갉아먹으며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인턴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막혔던 질문을 다시 끄집어냈다.

"좋아. 네 말대로 스텝을 당겨서 테스트 런 한번 돌려보자. 네가 메인 잡고 셋업 해봐. 시뮬레이션 데이터 뽑아서 다음 주 수요일 파트 회의 때 네가 직접 발표해."

"네? 제가 직접요?"

녀석의 동그란 눈이 커지더니, 이내 입가에 숨길 수 없는 짜릿한 미소가 번졌다. 녀석의 표정이 완벽하게 바뀌는 그 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현장 선배로서의 최대치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판을 깔아주는 것. 그것은 30년 전, 세계 최초의 D램을 만들어냈던 나의 아버지가 수많은 밤을 새우며 내게 말없이 물려준 유산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접견실 밖으로 최 대표님을 배웅하러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대표님. 2019년에... 정말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는데, 왜 굳이 집까지 걸고 그 힘든 개발을 포기 안 하셨어요?"

대표님이 주름진 눈가로 씩 웃으시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서 프로. 우리가 그거 안 만들면, 저놈들이 언제고 또 밸브 잠그고 우리 목줄 쥘 거 아니야. 우리 아들내미가 쓰는 스마트폰에 일본놈들이 허락해야 들어가는 부품이 있다는 게,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하더라고."

노인의 웃음소리 뒤로, 접견실 안에서 데이터를 엑셀로 정리하는 젊은 인턴의 빠른 마우스 클릭 소리가 경쾌하게 겹쳐 들려왔다.

※ 6: 램프업, 그리고 용인

밤 9시 12분. 메인 관제 모니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붉은색 그래프가 마침내 하락세를 멈추고 V자를 그리며 기준선 위로 힘차게 꺾여 올라갔다. 수율이 정상 궤도인 램프업 상태로 회복되었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숨을 죽이고 있던 열한 명의 파트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없이 그 상승 곡선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뒤에서 짧고 건조하게 "짝짝짝" 세 번 박수를 쳤다. 그것이 전부였다. 환호성도, 서로 얼싸안는 감격도 없었다. 다들 뻐근한 목을 돌리며 묵묵히 자신의 키보드 앞으로 돌아갔다. 오늘 밤의 위기를 넘겼다 해도, 내일 새벽이면 또 다른 챔버에서 예기치 못한 알람이 울릴 것이 뻔했으니까. 우리는 감정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내일의 전쟁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까.

자정이 다 되어가는 퇴근길.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지만, 통근버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자 거대한 우주선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팹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저 육중한 사각형의 건물은 1년 365일, 단 1초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설날과 추석 명절에도, 창문을 박살 낼 듯한 태풍이 몰아쳐도, 심지어 나라를 뒤흔드는 선거로 정권이 바뀌어도 저 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24시간 3교대로, 누군가는 방진복을 입고 저 눈부시게 밝은 무균의 공간 안에서 웨이퍼를 닦고 깎으며 밤을 지새운다. 지난 30년간, 단 하루의 예외도 없었다.

버스의 덜컹거림에 몸을 맡긴 채 나는 종종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내가 잠드는 지금 이 고요한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미국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는 누군가 간절한 마음으로 의료 AI에게 자신의 희귀병에 대한 분석을 묻고 있을 것이다. 유럽의 어느 작은 방에서는 누군가 화질을 높여주는 AI 프로그램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옛날 사진을 선명하게 복원하며 눈물짓고 있을 것이다. 그 방대하고도 따뜻한 데이터가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길목 어딘가에, 오늘 새벽 3시 47분에 내가 달려가 기어이 살려낸 300밀리미터짜리 웨이퍼 한 장이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내 이름을 모른다. 한국의 어느 공장에 서진우라는 엔지니어가 있다는 사실 따위는 영원히 알 필요도 없다. 기억을 담당하는 장치의 가장 큰 미덕은,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능하는 것이니까.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지금보다 훨씬 더 험난하고 잔인할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반도체 회로를 가늘게 깎아내는 미세화 공정은 이미 원자 단위까지 쪼개지며 인간이 극복하기 힘든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다. 경쟁국들은 수십조 원 단위의 국가 자본을 묻지마식으로 무한정 쏟아붓고 있고,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관세와 수출 통제 규제는 매년 세계 경제 지도를 폭력적으로 다시 그리고 있다. 남쪽 수도권 어딘가에 거대하게 짓는다던 메가 클러스터를 두고 정치권은 아직도 송전탑 하나 꽂지 못한 채 지루한 소모전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거라던 용인의 반도체 부지에서는, 계획이 발표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포크레인 몇 대만 흙먼지를 날리고 있을 뿐이다. 122조 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화려한 조감도 위에 적혀 있지만, 그 종이 쪼가리가 현실의 콘크리트 공장으로 완성되는 데는 앞으로도 10년이라는 피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나는 기어이 이 나라가 그 모든 악조건을 뚫고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믿음의 근거는 거시 경제의 통계 수치나 정부의 장밋빛 발표문 따위가 아니다. 오늘 하루, 내가 부대끼며 만난 진짜 현장의 사람들이다. 전화 한 통에 새벽 공기를 가르고 40분 만에 달려와 도면을 펼치던 장비사 팀장님, 집을 담보로 잡고 수율 0.1%를 올리기 위해 낡은 서류 봉투를 품고 온 예순셋의 대표님, 주눅 들지 않고 건방지리만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스물셋의 맹랑한 인턴, 수십 번 접으라는 수모를 겪고도 십 년을 버텨내어 기어이 세계 1위의 HBM을 만들어낸 듬직한 선배. 그리고...

'진우야. 수율은 천재 한 명이 만드는 게 아니야. 수율은 팹을 돌리는 수천 명 사람들의 인격이란다.'

"수율은 인격이다"라는 그 촌스러운 문장을 자랑스럽게 적어놓고 명예롭게 정년을 채운, 기흥 팹의 이름 없는 늙은 엔지니어.

반도체 세계 1위라는 기적은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리더의 멋진 선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남들이 곤히 잠든 새벽 3시에 붉은 알람을 들으며 팹으로 뛰어가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여기가 제일 많았을 뿐이다. 그 지독하게 단순하고 미련한 사실 하나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조그만 반도의 나라를 전 인류의 데이터를 품는 거대한 '지구의 기억 장치'로 만들었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다시 속도를 낸다. 나는 내일 새벽 3시에 맞춰진 휴대폰 알람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등받이에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는다.

"연산은 화려하고 기억은 조용합니다. 그 조용한 자리를, 우리는 33년째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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