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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전쟁 — 일본은 어떻게 무너졌고, 한국은 어떻게 올라섰는가
1편: 사무라이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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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전쟁, #일본반도체몰락, #플라자합의, #미일반도체협정,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국뽕, #오디오드라마, #메모리반도체, #한국경제, #인텔, #도시바, #NEC, #반도체역사, #제2의진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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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1990년,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열 개 기업 중 여섯 개가 일본이었다.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 마쓰시타. 이 여섯 기업이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65%를 쥐고 흔들었다. 미국의 인텔은 DRAM 시장에서 쫓겨나 사업을 접었고, RCA는 아예 폐업했다. 미국 언론은 이것을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 불렀다. 그런데 2020년, 세계 상위 열 개 반도체 기업에 일본은 단 한 곳도 없다. 한 곳도. 대신 그 자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라서 있다. 도대체 그 삼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것은 한 나라가 무너지고, 다른 나라가 올라선 이야기다. 그리고 그 무너진 나라는, 자기 손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 1 — 제2의 진주만
1985년 여름, 워싱턴 D.C. 미국 의회 청사 앞마당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세 명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들의 발 앞에는 일본 도시바제 라디오카세트가 놓여 있었다. 의원 한 명이 대형 망치를 치켜들더니 힘껏 내리쳤다. 플라스틱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의원이 땀을 닦으며 소리쳤다.
"미국의 기술을 도둑질한 나라의 제품입니다! 미국 시민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일본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짓입니다!"
퍼포먼스였지만, 그 안에 담긴 공포는 진짜였다. 1984년까지만 해도 미국과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을 44% 대 44%로 양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5년, 균형이 깨졌다. 일본이 치고 올라왔다. DRAM 시장만 놓고 보면 상황은 처참했다. 미국 기업의 점유율은 1978년 70%에서 1986년 20%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일본은 30%에서 75%로 치솟았다.
미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이라 불리던 실리콘밸리가 패닉에 빠졌다. 인텔은 1984년, 자신들이 만든 시장인 DRAM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 앤디 그로브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가 만든 기술을 일본이 가져가서, 더 싸고 더 좋게 만들어 되팔았다. 싸우는 게 아니었다. 학살당하는 거였다.'
일본의 무기는 세 가지였다. 첫째, 통산성의 전폭적 지원. 일본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둘째, 폐쇄적인 계열 문화. 일본 기업들끼리만 부품과 장비를 주고받는 울타리를 쳤다. 미국 장비와 소재는 일본 공장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셋째, 덤핑. 일본은 미국 기업보다 10% 이상 싼 가격에 반도체를 미국 시장에 쏟아부었다. 원가 이하로 팔면서도 내수 시장의 이익으로 버텼다.
미국 기업들은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RCA 폐업, 모토로라 위기, 페어차일드 매각 위기. 설상가상으로 후지쯔가 미국 반도체의 원조 격인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정가에 불이 붙었다.
"일본이 우리 반도체 산업의 할아버지뻘 되는 회사를 삼키겠다고? 이건 인수가 아니라 점령이다!"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한 의원이 포효했다. 반도체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안보의 문제라는 인식이 워싱턴 전체에 퍼졌다. 미사일 유도 시스템, 전투기 레이더, 암호 통신 장비, 그 모든 것의 심장이 반도체였다. 그 심장을 일본이 쥐고 흔들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미국은 반도체 식민지가 된다.'
워싱턴의 결론은 간결했다. 일본을 꺾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 2 — 플라자의 칼
1985년 9월 22일,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남쪽에 자리한 플라자 호텔.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의 재무장관 다섯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겉으로는 국제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속으로는 일본을 겨냥한 칼이었다.
미국의 요구는 단순했다. 달러 가치를 내리고, 엔화 가치를 올려라.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환율로 꺾겠다는 것이었다. 일본 대장상 다케시타 노보루는 이 자리에서 합의에 서명했다. 거부할 수 없었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나라가 미국의 경제적 요구를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플라자 합의'. 훗날 일본에서는 이것을 페리 제독의 흑선 이후 '제2의 개항'이라 불렀다.
합의 전 달러 대 엔 환율은 1달러에 250엔이었다. 합의 후 1년 만에 120엔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두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 이것은 재앙이었다. 어제까지 100엔에 팔던 반도체를 오늘은 사실상 200엔의 비용을 들여 같은 가격에 팔아야 했다. 가격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반 토막 났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인 1986년, 더 치명적인 칼이 날아왔다. '미일 반도체 협정'. 이 협정의 내용은 노골적이었다. 일본은 반도체 덤핑을 즉각 중단할 것. 일본 내수 시장에서 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당시 10%에서 20%까지 올릴 것. 일본 기업들은 미국에 생산 원가를 공개할 것.
일본 업계가 경악했다.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속옷을 벗으라는 소리와 같았다. 덤핑을 하지 말라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뜻이었다. 내수 시장을 열라는 것은 철옹성 같은 계열 거래 구조를 부수라는 명령이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서명했다. 또다시 거부할 수 없었다. 미국이 슈퍼 301조라는 핵폭탄급 무역 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을 본 일본 경제지 한 곳은 이렇게 썼다.
'이것은 협정이 아니다. 항복 문서다. 1945년 미주리호 갑판 위에서 서명한 그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 항복 문서에는 미국도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결정적인 한 줄이 숨어 있었다. 협정은 일본 내 점유율을 '미국산'이 아니라 '외국산'으로 명시한 것이다. 미국이 체면치레로 넣은 이 단어 하나가, 한참 뒤 한국이라는 나라에게 문을 열어주게 된다. 아직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 3 — 도쿄가 무너지는 소리
1987년, 일본이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국이 보복에 나섰다. 일본산 TV에 100% 관세가 부과되었다. 일본제 컬러 TV의 미국 수출 가격이 하루아침에 두 배로 뛰었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소니와 도시바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다음은 반도체라는 경고.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전략은 혼란에 빠졌다. 덤핑을 할 수도 없고, 엔고 때문에 가격 경쟁력은 바닥이고, 내수 시장은 강제로 열어야 하고. 삼중의 칼날이 일본 반도체 산업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플라자 합의의 후폭풍이 일본 경제 전체를 삼키고 있었다. 엔고 불황에 빠진 일본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풀린 돈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렸다. 도쿄 한복판의 일본 황궁 부지 가격이 캘리포니아 전체 땅값보다 비싸다는 말이 돌았다. 거품이었다. 그리고 거품은 반드시 터진다.
1991년, 일본의 버블 경제가 폭발했다. 주가가 폭락하고 부동산이 무너지고 은행이 흔들렸다. 일본 기업들에게 반도체에 투자할 여유가 사라졌다. 정확히 이 시점에, 반도체 산업은 세대 교체의 기로에 서 있었다. 16M DRAM에서 64M으로, 64M에서 256M으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려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했다. 일본에게는 그 돈이 없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정확히 이 순간을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 서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에서는 매일 새벽부터 불이 켜져 있었다. 1992년, 삼성은 세계 최초로 64M DRAM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이 버블 붕괴와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삼성은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 고통받는 10년은 한국에게 기회의 10년이었다. 미일 반도체 협정이 일본 시장에 '외국산 20%'라는 문을 열었을 때,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미국 기업이 아니었다. 미국은 이미 메모리 반도체에서 손을 떼고 CPU 같은 비메모리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빈 의자에 앉은 것은 한국이었다.
일본 반도체 업계의 한 엔지니어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미국에게 맞고 있을 때, 한국이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알았어도 무시했다. 한국이? 설마.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 4 — 잃어버린 삼십 년
일본 정부의 대응은 재앙을 더 키웠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이 너무 많아서 내부 경쟁 때문에 약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법이라고 내놓은 것은 강제 합병이었다. 히타치와 NEC의 DRAM 사업부를 합쳐 엘피다 메모리를 만들었다. 도시바와 후지쯔도 묶으려 했다. 기업 문화가 다르고, 기술 노선이 다르고, 사내 정치가 뒤엉킨 회사들을 억지로 합치니 물과 기름이었다. 시너지는커녕 내부 갈등만 폭발했다.
엘피다 메모리. 일본 반도체 마지막 희망이라 불린 이 회사의 운명은 처참했다. 정부가 수천억 엔을 쏟아부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삼성과 하이닉스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2012년, 엘피다는 파산했다.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도산이었다. 이 소식을 전한 NHK 뉴스의 앵커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청자들은 그 침묵에서 한 시대가 끝나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그 뉴스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의 한 회의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회의실에 앉아 있던 임원 한 명이 중얼거렸다.
'저게 한때 세계 1위였던 나라의 반도체인가.'
다른 임원이 말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투자를 멈추거나, 기술 개발을 게을리하면, 십 년 뒤에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우리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일본의 몰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울이라는 것을.
1990년,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열 개 기업에 일본은 여섯 곳이었다. 한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020년, 일본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이 올라서 있다. 메모리 반도체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시장의 75%를 지배하고 있다.
삼십 년 동안 일본이 잃어버린 것을 한국이 주웠다. 일본은 미국에게 꺾였지만, 그것만이 패인은 아니었다. 일본 반도체의 전직 기술자 유노가미 다케시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미일 반도체 협정이 몰락의 원인이라는 건 일본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진짜 이유는 한국에 비해 혁신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기술의 패배였다고.
미국의 칼이 일본의 가슴에 꽂혔을 때, 한국은 그 옆에서 쓰러지는 거인의 무기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그 무기를 더 날카롭게 벼려서, 세계를 향해 겨누었다.
일본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나라라는 것을 아직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 오만이, 삼십 년 뒤 또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지게 된다.
2019년 7월, 일본은 한국의 목을 조르려 했다.
※ 5 — 빈 왕좌를 향해
1992년, 일본 요코하마. NEC 반도체 사업부의 한 회의실에서 긴급 대책 회의가 열렸다. 스크린에 떠오른 숫자 하나가 회의실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삼성전자, 세계 최초 64M DRAM 개발 성공.'
"확인된 겁니까?"
사업부장이 물었다. 부하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쿄 일렉트론 쪽에서도 확인했습니다. 삼성이 진짜 해냈습니다."
회의실에 긴 침묵이 깔렸다. NEC는 당시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기업이었다. 16M DRAM까지는 일본이 앞서고 있었다. 64M는 일본이 먼저 해낼 것이라고 모두가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먼저 해버렸다. 그것도 삼성이. 불과 9년 전, DRAM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일본 업계가 코웃음을 치던 바로 그 회사가.
'우리가 미국에게 맞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한국이 이렇게까지 올라왔단 말인가.'
사업부장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의 책상 위에는 아직 읽지 못한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대응 보고서, 미일 반도체 협정 이행 점검 보고서, 버블 붕괴에 따른 투자 축소 계획서. 미국의 칼을 막느라 양손이 꽉 묶여 있는 동안, 뒤에서 한국이라는 권투 선수가 워밍업을 끝내고 링 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각, 한국 경기도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는 축배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64M 개발 성공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연구소장이 엔지니어들을 소집했다.
"64M은 끝났다. 내일부터 256M에 들어간다."
한 연구원이 뒤에서 중얼거렸다.
'미친 거 아냐, 축하 파티도 없이?'
옆에 있던 선배가 팔꿈치로 찔렀다.
"여기가 그런 곳이야. 축하는 1등 한 뒤에 하는 거고, 1등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뺏기는 거야."
삼성의 전략은 명확했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뛰어넘는 것. 일본이 주춤하는 매 순간을 이용해 한 세대씩 건너뛰는 것. 그리고 그 전략의 핵심 연료는 '역투자'였다. 반도체 산업에는 사이클이 있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불황이 오면 투자를 줄인다. 삼성은 정반대로 했다. 불황이 올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경쟁자들이 움츠러드는 그 틈에 생산 설비를 깔고,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확보했다. 호황이 돌아올 때는 이미 경쟁자보다 한 발 앞에 서 있었다.
일본이 거품 붕괴와 미국의 통상 압박이라는 이중고에 투자를 줄이고 있을 때, 삼성은 연간 매출의 40%에 가까운 금액을 반도체에 쏟아부었다. 사내에서도 미쳤다는 소리가 나왔다. 적자가 이어지던 시기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경영 판단이 아니라 배수진이었다. 반도체에서 실패하면 삼성이라는 회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도박이었다.
그런데 그 도박이 맞았다. 매번 맞았다.
※ 6 — 무너지는 도미노
199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도미노가 시작됐다. 첫 번째 도미노는 가격이었다. DRAM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일본 기업들은 치명타를 입었다. 미일 반도체 협정 때문에 덤핑으로 버틸 수도 없었고, 엔고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없었다. 삼성은 불황기에 미리 깔아둔 최신 생산 설비로 원가를 낮추며 버텨냈지만, 일본 기업들의 낡은 공장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터졌다. 한국도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치를 맞았다. 원화 가치가 반 토막 나고,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일본 업계에서는 쾌재를 불렀다.
"이제 한국 반도체도 끝이다. 삼성이고 현대전자고 이 위기를 못 넘길 것이다."
도쿄의 한 반도체 전문 매체가 이렇게 전망했다. 실제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는 위기에 몰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 기업들이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원화 폭락은 한국 반도체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안으로는 고통이었지만, 밖으로는 가격 경쟁력이 폭발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달러로 받는 수출 대금이 원화 기준으로 두 배가 되었다. 삼성은 이 상황에서 또다시 상식을 뒤집었다. IMF 한복판에서 반도체 투자를 늘렸다. 경쟁자가 쓰러질 때 앞으로 나가는, 그 미친 전략을 다시 한번 꺼낸 것이다.
삼성의 한 임원이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다들 살아남자는 판에 우리만 전진하고 있었다. 미친 짓이라는 건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미치지 않았으면 오늘의 삼성은 없었다.'
IMF가 지나간 뒤, 세계 반도체 시장에 다시 불이 켜졌을 때 지형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라 있었고, 일본 기업들은 하나둘씩 DRAM 시장에서 퇴장하고 있었다. NEC가 빠지고, 후지쯔가 빠지고, 히타치가 빠졌다. 그 빈자리를 삼성과 하이닉스가 채웠다.
일본 정부는 패닉에 빠졌다. 기업들을 살리겠다며 엘피다 메모리를 만들고, 르네사스를 만들고, 합종연횡을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업을 합치는 것과 기술을 합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설계 철학, 다른 공정 기술, 다른 사내 문화를 가진 회사들을 억지로 붙여놓으니 시너지는 나지 않고 갈등만 터져 나왔다.
엘피다의 한 전직 엔지니어는 이렇게 증언했다.
'NEC 출신과 히타치 출신이 한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회의 시간의 절반은 어느 쪽 설계 방식을 따를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데 썼다. 적은 밖에 있는데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엘피다 파산. 일본 정부가 수천억 엔을 투입하고도 살리지 못한 회사. 부채 총액 4,480억 엔.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의 도산 기록이었다.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에 헐값에 인수되었다. 일본의 마지막 DRAM 기업이 미국 기업에 넘어가는 순간, 일본 반도체의 DRAM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한국의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 뉴스를 접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
"일본이 무너진 건 미국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이 칼을 꽂았지만,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 건 일본 자신이다. 우리는 그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 7 — 유령의 복수
2019년을 앞두고, 일본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는 처참했다.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위 안에 일본 기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DRAM은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삼분하고 있었다. 파운드리는 대만의 TSMC가 독주하고 있었다. 비메모리는 미국의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이 장악하고 있었다. 일본에 남은 것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의 기술력뿐이었다.
소재. 그것이 일본의 마지막 카드였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실리콘 웨이퍼가 필요하고, 웨이퍼를 깎으려면 포토레지스트가 필요하고, 회로를 새기려면 불화수소가 필요하다. 이 소재들에서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포토레지스트 글로벌 점유율 93%, 불화수소 핵심 공급처. 반도체를 만드는 나라는 한국이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를 쥐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 사이에서 위험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소재를 틀어쥐면, 한국의 반도체를 멈출 수 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가가 들끓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측근들 사이에서 보복론이 급속히 힘을 얻었다. 외교로 풀 수 없다면, 경제로 압박하자. 한국의 급소인 반도체 소재를 겨냥하자.
2019년 초, 일본 경제산업성 내부에서 극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소재 목록이 작성되었다.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이 세 가지를 틀어막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 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일본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대일 의존도는 명백했다. 포토레지스트 93%, 불화수소 44%, 불화폴리이미드 45%. 특히 첨단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의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화학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이것을 끊으면 한국은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최소 6개월, 길면 1년 이상 생산이 마비될 것이다. 한국의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은 6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일본의 한 경제산업성 관료가 비공식 석상에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아무리 반도체를 잘 만들어도, 재료를 우리가 쥐고 있는 한 한국은 우리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다."
오만이었다. 삼십 년 전, 세계 반도체 1위라는 자만 속에서 미국의 칼을 맞았던 것과 똑같은 오만이었다. 일본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잊고 있었다. 위기에 몰리면 더 강해지는 나라. 칼을 꺼내면 맞고만 있지 않는 나라. 등을 벽에 대면 벽을 부수고 나오는 나라.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규제를 공식 발표했다. 그날 한국의 주가가 폭락했고, 업계에 공포가 퍼졌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공포 뒤에 찾아온 것은 분노였다. 그리고 분노는 행동이 되었다. 일본이 쏜 화살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가슴에 꽂히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엔딩 (1편)
반도체 상위 열 개 기업 중 여섯 개가 자기네 나라였던, 그래서 영원할 것 같았던 나라. 그 나라는 미국이라는 폭풍에 맞아 무너졌고, 그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한국이 서 있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날개를 꺾은 건 사실이지만, 그 빈자리를 차지한 건 유럽도, 대만도 아닌, 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왕좌에서 쫓겨난 일본이, 마지막 남은 무기로 한국의 목을 노립니다.
2019년 7월, 불화수소 수출규제. 일본은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얼마나 처절하게 박살 나는지는, 다음 편에서 만나겠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1편)
Cinematic 16:9, photorealistic, no text. A dramatic low-angle shot of a Japanese businessman in a dark suit standing alone in a vast empty semiconductor factory floor, his reflection visible on the polished floor. Behind him through massive glass windows, the Tokyo skyline is visible at dusk with fading golden light. In his hand he holds a silicon wafer that catches the last light. The factory machines are powered down, covered in dust cloths, conveying abandonment. The mood is melancholic and dramatic like a fallen empire. Shot on Sony Venice cinema camera, shallow depth of field, moody blue and amber color grading, cinematic lens flare, ultra detailed.